곰스603

곰스603 이야기 · 2007년부터

가게는 잘됐다.
그런데 쫓겨났다.

2013년. 11평 가게가 하루 매출 450만 원을 찍었던 이듬해, 건물주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옮겨 갈 곳마저 계약을 거절했다. 새 가게를 찾고 공사까지 끝낼 시간은 40여 일뿐이었다.

잘되던 가게가 지하로 내려가고, 수년간 적은 레시피가 물에 잠겼다. 다시 일어섰다고 생각한 뒤에도 이야기는 몇 번이나 뒤집혔다.

그런데 왜, 이 가게를 놓지 못했을까? 이야기는 6년 전, 잠깐만 맡을 생각이었던 작은 요거트 가게로 돌아간다.

처음의 이야기부터 읽기 ↓

2007–2008

챕터 01

무모한 시작, 그리고 하나의 질문

미국에서 3년, 공부보다 놀러 다닌 날이 많았다. 그때 보고 먹은 것들이 훗날 곰스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2007년,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집안은 투자 사기로 무너져 있었고, 그해 11월 논현동의 작은 요거트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인수해 수제버거 메뉴를 추가했다. 자리만 잡히면 가족에게 매장을 맡기고 다시 미국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앞집 해장국집은 점심마다, 옆집 삼겹살집은 저녁마다 줄을 서는데 우리 집엔 어느 시간에도 줄이 없었다. 배달만 바빴다. 한식은 평상시의 음식, 양식은 특별한 날의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봄, 요거트 간판을 내리고 '곰스키친'을 올렸다. 그렇게 곰스의 식사 메뉴 콘셉트가 정해졌다.

리브랜딩 전 상호 '곰스키친' 간판이 걸린 논현동 옛 매장 정면
옛 상호 '곰스키친'

“양식을,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먹을 수 있게 만들 수 없을까?”

—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양식을 만들자! 그렇게 곰스의 식사 메뉴 콘셉트가 정해졌다.

2008–2012

챕터 02

응급실 두 번, 그래도 즐거웠다

2008년 여름, 미국의 버거집과 스테이크하우스, 델리를 훑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메뉴 개발에 파묻혔다. 빵이 성에 차지 않아 하루 20시간 넘게 일하며 제빵을 독학하다 응급실에 두 번 실려 갔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2010년 삼성동 지하에 빵 작업장 겸 배달전문점을 만들어 매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빵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고, 2012년에는 11평 매장이 하루 매출 450만 원을 찍었다. 그 사이 연습해 본 새 메뉴만 200가지, 노트 두 권에 빽빽하게 적었다. 무엇이 사람을 여기까지 몰아붙였을까. 고생이 아니라, 재미였다.

“그런데도 이때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내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현실로 옮긴 내 생각이 시장에 맞아떨어져 매출로 증명되는 게 즐거웠다. 어느새 '다시 공부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었다.”

2013

챕터 03

쫓겨난 가게, 남은 시간 40여 일

2013년, 잘 크던 논현 매장에 건물주의 계약 해지 통보가 날아왔다. 새로 들어올 사람을 구해 권리금을 받고 나가려 했지만, 건물주의 방해로 번번이 무산됐다. 결국 권리금을 헐값으로 낮추고서야 간신히 매각 계약을 맺었다.

옮겨 갈 곳은 찾아둔 상태였다. 논현역 가까운 대로변, 버거킹 옆 매장. 버거킹과 나란히 비교되고 싶을 만큼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쪽 건물주가 업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계약을 거절했다. 기존 매장은 비워줘야 하는데, 갈 곳이 사라졌다. 새 매장을 찾고 공사까지 끝내야 할 시간은 40여 일뿐이었다.

미친 듯이 매장을 알아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당시 매출의 85%를 차지하던 배달이라도 이어가야 했다. 결국 지금 논현본점이 있는 건물의 지하로 급하게 내려갔다. 손님을 맞던 홀을 포기하고, 배달만으로 버티는 가게가 됐다.

건물주에게 쫓겨나 급하게 이사 간 지하 매장
건물주에게 쫓겨나서 급하게 이사 간 지하 매장

“급해졌다.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렸다.”

2013–2014

챕터 04

물에 잠긴 노트 두 권

지하에서 배달을 이어가면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기존 매장이 갑자기 사라지자 손님들은 망한 줄 알고 주문을 멈췄다. 홀을 잃은 데 이어 배달 매출까지 뚝 떨어졌다. 덩치를 줄여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삼성동 매장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논현동 지하로 합쳤다.

그렇게 지하에서 버티던 때, 폭우가 왔다. 논현동 시장이 잠겼고 지하 매장은 누수로 물바다가 됐다. 수년 동안 쌓아온 아이디어와 레시피, 빽빽하게 채웠던 노트 두 권도 그 물을 피하지 못했다.

“2013~14년쯤 폭우가 내려 논현동 시장이 다 잠겼을 때, 지하 매장이 누수로 물바다가 되면서 종이 자료 대부분을 버려야 했다. 그렇게 브레인스토밍한 아이디어와 레시피가 빼곡했던 노트를 잃은 게 지금도 정말 아쉽다.”

폭우에 잠겼던 레시피 노트 페이지
폭우에 잠겼던 레시피 노트 페이지
폭우에 잠겼던 레시피 노트 페이지
폭우에 잠겼던 레시피 노트 페이지
물에 잠긴 레시피 노트

2014–2015

챕터 05

지하에서 다시 1층으로

홀이 없는 지하 매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배달에 모든 걸 올인하는 것이었다. 곤두박질치던 매출은 2014년부터 다시 살아났고, 하루 매출은 550만 원까지 뛰었다. 배달의민족 TV CF에 '전국 주문수 1위'로 소개된 것도 그 무렵이다.

이듬해, 쫓겨 내려왔던 바로 그 건물 1층에 곰스603 논현본점을 열었다. 2년 만에 홀을 되찾았다. 시련의 자리가 재기의 자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해,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왔다.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하는 형 나기주
방송 인터뷰 — 화면 기록
'주문수 1위' 자막이 올라간 영상 화면
'주문수 1위' 자막 화면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나 이곳저곳에서 경험을 쌓고 온 친동생이 귀국했다. 조금씩 메뉴 콘셉트가 바뀌기 시작했으며 장사가 점점 잘됐다.”

2016–2020

챕터 06

정점의 경고음, 그리고 도미노

뭐든 하면 되는구나 — 그 자신감에 취해 가맹 사업에 손을 댔다. 2016년, 지금은 동생이 대표를 맡고 있는 포이사거리점을 직영으로 열었고 안양, 응암, 낙성대, 빵 공장, 배달 브랜드까지 몸집을 불렸다. 정점은 2017년. 경고음도 2017년이었다. 사장이 매장에 없자 직영점 매출부터 급락했다.

2019년 도미노 폐업이 시작됐고, 2020년에는 코로나까지 닥쳤다. 운영하던 매장들을 정리하고 지금의 논현본점 한 곳으로 모든 기능을 몰아넣었다. 떡볶이 밀키트를 택배로 팔며 버텼지만, 갚아야 할 빚은 그대로였다.

여러 매장의 일을 한 곳으로 모으다 보니 논현본점의 매출은 오히려 전년보다 올랐다. 그 때문에 코로나 시기 지원금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매장은 줄었는데, 남은 한 곳의 매출만 보면 장사가 나아진 셈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때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시스템'이라 믿었던 것은, 사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만 돌아가는, 나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직원들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12년의 세월을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시스템부터 철저히 다시 세우기로 했다.

매장 서너 곳을 운영하면서 받은 대출을 이제는 오롯이 한 곳의 매장으로 갚아 나가야 했다. 막막했다.

2022

챕터 07

사다리 위의 사장

거리두기가 풀렸을 때, 매장을 다시 여는 대신 다시 정의하기로 했다. 곰스의 역사 그 자체였던 수제버거를 스스로 단종시키고, '신박한 양식주점 곰스' — 양식당이자 주점으로 방향을 잡았다. 저녁 매출을 키우기 위한 승부수였다.

문제는 돈이었다. 리브랜딩이라는 말은 근사했지만 통장에는 여유가 없었다. 이번에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사다리에 올라 기존 간판을 떼어내는 모습
책상 위 도구들 사이에서 직접 제작 중인 곰스 간판 글자
사다리 위에서 새 양식주점 간판을 설치하는 모습
설치를 마치고 불이 켜진 신박한 양식주점 곰스 간판

“여유 자금이 없어서 간판 글씨를 직접 만들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직접 교체했고, 인테리어는 기존 벽에 포스터를 붙여 해결했다.”

2024–현재

챕터 08

스테이크와 파스타 그리고 한잔

2024년, 브랜딩을 다시 공부하면서 매출도 조금씩 회복됐다. 그 무렵 예전에 접어 두었던 테이블 그릴 스테이크가 다시 생각났다. 8~9년 전 직원들의 반대로 내놓지 못했던 메뉴였다. 예전 아이디어를 그대로 꺼내기보다 이런저런 시도를 거쳤고, 고기를 진공 포장해 버번과 함께 48시간 숙성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진공 버번에이징 스테이크다. 고기에 술 향을 남기는 것보다 부드러운 식감에 더 신경을 썼다.

스테이크와 술을 함께 즐기는 식사 자리
테이블 그릴 위에서 한 점씩 굽는 스테이크
불 위에서 굽는 스테이크 연출 이미지
스테이크와 곁들임이 담긴 한 상

“솔직히, 8~9년 전에 고집을 부려 그대로 출시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모든 게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챕터 09

아직, 현재 진행형

미국에서 보고 먹었던 것들을 가게에 옮겨 보던 형과,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고 돌아온 동생. 2015년부터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11년이다. 형은 사업과 브랜드를, 동생은 요리를 맡아왔다. 지금은 논현본점과 동생이 대표를 맡은 포이사거리점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가게도 메뉴도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편하게 양식을 먹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곰스603을 함께 운영하는 형제

“2007년부터 모르는 건 하나씩 공부하며 버텼다. 혼자 알아서 해내야 하는 게 참 힘들었는데, 동생이 돌아온 뒤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나는 일단 해보자며 밀어붙이는 편이고, 동생은 자기 기준이 분명한 셰프다. 생각이 달라 크게 싸운 날도 있었다. 그래도 함께 일하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좋다.”

형제가 오래 고민한 것들이 손님에게는 이런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테이크 먹는 날을 따로 잡지 않아도.

오늘 점심은 국밥 대신 스테이크. 퇴근길에는 파스타에 맥주 한 잔. 평범한 저녁도 우리의 스테이크 덕분에 특별한 날이 되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늘 먹고 싶은 메뉴 찾기 →

한 점씩, 내 속도로 굽는 저녁.

곰스의 스테이크 세트는 레어 상태로 초벌한 고기를 개별 화로에서 직접 구워 마무리하는 방식입니다. 한 점씩 원하는 굽기로 익혀, 내게 가장 맛있는 순간에 드세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취향에 맞춰 즐겨보세요.

곰스의 스테이크 이야기 →

아껴 둔 술, 같이 마실 사람만 정하세요.

밖에서 주문하기엔 가격이 부담스러웠던 와인이나 위스키도 직접 가져와 즐겨보세요. 스테이크, 파스타처럼 그 술과 잘 어울리는 곰스의 음식에 곁들이면 됩니다. 안주 또는 플래터를 4만 원 이상 주문하면 1병까지 콜키지가 무료입니다. 소주와 맥주를 제외한 주류를 가져오실 수 있습니다.

콜키지 안내와 주류 보기 →

곰스는 아직도 현재진행형

요거트 가게에서 시작해 버거를 만들고, 이제는 스테이크를 굽는다. 그동안 곰스를 찾아온 손님도, 우리가 내어놓는 음식도 달라졌다. 오래 다닌 손님이 새 메뉴를 맛보고, 처음 온 손님이 이 가게를 알아가는 중이다.

형제에게는 아직 해보고 싶은 요리도, 고치고 싶은 부분도 많다. 맛있게 먹었다는 한마디에 힘을 얻고, 아쉬웠다는 이야기는 다음 접시를 준비할 때 다시 떠올린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가게로, 오래 만나고 싶다.

오늘 저녁 곰스603 매장에서 잔을 부딪히는 손님과 형제